철부지 옹고집 환자 때문에 골치, 진료의의 해법은 무엇
자기표현욕구와 自尊욕구 충족시켜야 대화가 잘 풀린다

일본대학 예술학부 교수겸 심리학박사 사토 아야코

사람의 눈빛이나 말솜씨, 태도에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자타가 모르는 사이에 자기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진료현장에서 의사가 환자와 친밀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려면 어떤 퍼포먼스를 갖춰야 할까. 의료현장의 질문에 이 분야 전문가가 Q&A 형식으로 해설한다.

Q. 최근 ‘철부지(또는 옹고집)’ 환자가 부쩍 늘어 애를 먹는다. “당분간 술 드시면 안됩니다”라고 말하면 알아들었다는 듯이 대답해 그대로 귀가 조치했더니 바로 그 날 중으로 “반주쯤은 상관없겠죠?”라는 전화가 걸려오는 실정이다. 환자가 의사의 설명을 제대로 납득했는지를 판별할 방법은 없겠는가. (50대, 정형외과 근무의)

A. 대학부속병원에 근무하는 H의사로부터의 상담이다. 매우 흔하고 있을 법한 고민이어서 당사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H의사와 환자간의 진찰 시 대화 내용을 다시 한 번 비디오 녹화해서 세밀히 분석했다. 그러자 확실히 의사와 환자의 말이 전혀 맞물리지 않고 동문서답하는 장면이 몇 군데 있었고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S환자는 요통에 대해 현재 사용 중인 진통제가 잘 듣는다고 믿고 있고 H의사에게 여러 차례 그 진통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H의사는 의학적인 관점에서 대충 환자의 허리를 수술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판단하고 “그런데 수술 날짜를 잡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라고 화제를 돌려 말하며 환자의 반응을 살펴본다.

화제가 틀려 서로 ‘동문서답’
H의사가 열심히 수술 방법과 구체적인 입원일수 등을 설명한 뒤 S환자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놀랍게도 환자는 다른 생각을 했었는지 “그런데 말입니다. 아까 말씀 드린 약 말인데요”하며 처음에 했던 말을 다시 꺼낸 뒤 오른손으로 약병을 기울여 약을 마시는 시늉을 한 것이다.

이런 환자의 말 속에는 잠재적인 욕구가 숨어 있다. S환자는 사실 수술을 받고 싶지 않다. 그의 속마음은 몸에 칼을 대는 수술을 겁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복용 중인 약으로 급한 불이 꺼진다면 수술을 받지 않거나 연기하고 싶은 것이 본심이다.

참고로 S환자의 구식스타일의 옷차림이나 말투를 보면 그가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적인 ‘질서형’ 인물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반면에 H의사는 복용약에 대한 화제를 단번에 끝내버리고 수술 일정을 정해 주는 것이 환자를 돕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바로 이것이 의사로서의 질병치료 ‘프로페셔널’다운 판단이며 직업적인 욕구이기도 하다.

이처럼 양자의 욕구가 맞물리지 않고 말로만 주거니 받거니 해봤자 헛도는 톱니바퀴처럼 결과는 뻔하다. S환자는 “입만 열면 수술 타령만 하고 내 기분은 안중에도 없다니까!” 라고 막말을 내뱉으며 끝내는 통원 치료를 위해 다른 병원으로 바꾸고 말 것이다. 그리고 H의사는 앞서 상담했듯이 ‘철부지(또는 옹고집)’ 환자만 자꾸 늘어서 고민이라고 푸념할 것이다.

만인의 공통된 ‘자기 표현 욕구’
그렇다면 이런 마찰과 갈등, 불필요한 오해를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 키포인트는 H의사가 S환자의 욕구를 정확히 읽어낼 줄 아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다.

진찰실을 찾아 온 S환자의 마음은 다음의 2가지 욕구였을 것이다. 하나는 ‘자기 표현 욕구’로 자기 이야기, 환자로서의 하소연을 차분히 들어줬으면 하는 욕구이다. 따라서 H의사는 환자가 말하는 중간에 수술 따위의 이야기를 꺼내기보다 약의 유효성이나 부작용에 관한 이야기로 응대했더라면 S환자는 상당히 만족스러워했을 것이다.

실제로 다른 환자에게 진찰실에서 얼마든지 마음 내키는 대로 말하도록 시키고 시간을 재어본 결과 회화에 소요된 시간은 정작 3분에 불과했다. 길어봤자 3분인 환자의 호소 시간은 방송용 낭독 원고 매수로 따지면 약 800자 정도의 분량인 셈이다. 800여자로 구성된 짧은 문장을 단숨에 말하도록 허용한다면 그 환자는 스스로 만족할 것이고 의사는 순조롭게 진료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약에 관해서 좀 더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구는 그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 자세나 의사로부터 요통에 관한 수술 치료 이야기를 듣고도 약을 먹는 시늉을 하는 등의 동작에 잘 나타났다. 따라서 H의사는 이런 몸짓에서 ‘환자는 약물치료 쪽으로 상당히 마음이 기울었구나’하고 눈치를 채야 했다. 의사는 먼저 약물치료에 대해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간단히 대화한 뒤 수술로 화제를 돌려도 결코 늦지 않았을 것이다.

환자의 자존심은 건들지 말 것
S환자의 말을 H의사가 가로막자 그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자존욕구’라고 해서 ‘자기를 가치 있는 인간으로 생각해달라’는 욕구의 표출이다.

미국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필자(뉴욕대 출신)의 친구들은 치료 중에 ‘의사가 나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준 것이 기뻤다’고 말한다. 그 곳에서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의사가 환자에게 “처음 뵙겠습니다. OOO씨. 제가 OOO씨를 담당할 △△△입니다. 뵙게 돼서 반가워요. 오늘 상담하고 싶으신 게 있으세요?”라고 화두를 꺼내고 대화를 시작한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의사가 환자를 존중하는 태도와 마음이 하늘땅만큼 차이난다는 것이 미국의 병원에서 진료를 경험한 내 친구들의 소감이다.

환자의 자존욕구는 그 태도에서 반드시 나타난다. 예를 들어 환자의 뜻을 무시하고 의사가 딴 이야기를 꺼내면 환자는 슬쩍 고개를 돌려버린다. 또는 환자가 “몹시 아프다”고 호소하는데도 의사가 “그 정도도 못 참는가”라는 표정을 지으면 이내 무릎 위에 깍지 낀 두 손으로 시선을 떨군다. 성격이 급한 환자라면 의사를 힐끗 노려보기도 할 것이다.

환자의 ‘자기 표현 욕구’와 ‘자존 욕구’, 이 2가지 원초적인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켜 준다면 그 뒤의 대화는 순조롭게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런 요인을 분석한 뒤 H의사에게는 앞으로 환자의 말하는 기세와 억양, 표정과 손동작, 의사를 대하는 자세 등을 세밀히 관찰하고 체크하면서 그 속에 깔린 2가지 욕구를 재빨리 파악해서 충족시켜주는 것이 초점이 맞지 않은 긴 대화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오히려 진찰 시간의 능률을 올리는 요령이라고 조언했다.

〔오늘 강의의 요약〕(Today's Summary)

1. 환자의 마음 속 욕구는 얼굴 표정과 자세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2. 우선 환자의 욕구를 파악해야지만 그 후 진료 대화를 원활히 진행할 수 있다.
3. 환자의 ‘자기 표현 욕구’와 ‘자존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화로 이끌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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