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해 원리(Study of Interruption)와 적응성 무의식력 터득
환자 첫 대면 2초 사이에 직감 작동, 공감과 요점 정리로 설득

일본대학 예술학부 교수·심리학박사|사토 아야코

사람의 눈빛이나 말솜씨, 태도에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자타가 모르는 사이에 자기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진료현장에서 의사가 환자와 친밀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려면 어떤 퍼포먼스를 갖춰야 할까. 의료현장의 질문에 이 분야 전문가가 Q&A 형식으로 해설한다.

Q. 아침 첫 손님으로 내원한 여성 환자가 현기증이 난다고 해서 어떤 형태의 현기증이냐고 물었더니 전혀 알맹이 없는 말로 횡설수설한다. 그 뿐 아니라 엉뚱한 화제를 길게 늘어놓는다. 질병과는 아무 상관없는 환자의 긴 수다를 쉽게 차단하는 방법이 없을까? (30대, 이비인후과 근무의)

A. 내가 평소에 참석하는 의료관계자 학습회에서도 M의사와 비슷한 질문을 가끔 받는다. 의사의 질문에 동문서답하거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잡담하려는 환자가 가끔 나타나 곤욕을 치르는 의사가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문제에는 좋은 대처법이 있다. 미국에서 최근 발표된 ‘방해의 원리(Study of Interruption)’와 관련된 것. 방해의 원리란 두 사람간의 대화 장면에서 지위나 나이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의 발언권을 가로채기 쉽고, 반대로 하위급은 상위급의 발언권을 방해하기 어렵다는 원칙을 뜻한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도 상사가 이야기하는 도중에 그 부하가 개입해서 “이야기하시는데 잠깐 실례해도 괜찮겠습니까(May I interrupt you a while?)” 라면서 말의 중간을 끊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갑자기 말을 막으면 역효과
‘방해의 원리’에서 보면 어려운 의술을 익혀 질병을 치료해주는 입장인 의사가 일반적으로는 상위자로서 환자의 발언권을 쉽게 가로챌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M의사처럼 이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의사가 문득 또는 막무가내로 환자의 말을 중단시키면 경우에 따라서는 둘 사이에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돼 커다란 문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상은 환자로서도 귀중한 진료시간에 잡담하려는 것이 아니라 속내는 의사에게 확실하게 말로 표현해서 원하는 것을 잘 이해시키려는 것이지만 말주변이 없어서 간결하게 요약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잡담으로 들리는 것이다. 이런 경우 상위자인 의사는 어쩌면 좋을까.

가장 직접적인 대처 방법은 “말씀은 그쯤만 하시죠” 라면서 중단시키는 일인데 이것은 그다지 상책이 못된다. 퍼포먼스학에서는 이럴 경우 처음엔 작은 동작부터 시작해서 차츰 더 큰 동작을 통해 상대방에게 신호(Signal)를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되어 있다.

예컨대 상대방을 지켜보는 두 눈의 깜빡거리는 횟수를 늘려서 ‘이제 됐습니다’라는 신호를 발신하거나 상반신을 앞뒤로 몇 차례 구부렸다 폈다 흔들면서 ‘알아들었습니다’라는 시늉부터 전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입을 열어 ‘자, 말씀하신 것을 간추려 볼까요’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때 ①적응성 무의식력(2초 사이에 상대를 판단할 수 있는 순발력) ②환자에게 공감한다 ③환자의 말을 정리한다는 3가지 조치가 핵심적인 요령이다.

처음의 2초가 순발력을 좌우
좀 더 구체적인 사례로 생각해보자. 트럭 한 대가 길 저쪽에서 당신을 향해 질주해 온다. 잘 피하지 못하면 차바퀴에 깔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 당신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안전한 방향으로 몸을 피할 것이다.

자신의 주변 정보가 매우 희박한 여건에서도 ‘오른쪽으로 피하면 된다’거나 ‘왼쪽으로’라는 선택을 거의 본능적으로 내린다. 한순간에 상황을 판단하고 마주 앉은 사람의 평가를 내리는 힘, 바로 이것이 ‘적응성 무의식력’이다.

최근 수년간 미국 심리학회에서는 몇몇의 심리학자들이 이 부분에 관한 실험을 되풀이했다. 이런 과정에서 판명된 사실의 하나가 ‘적응성 무의식력’을 발휘하자면 시간이 불과 ‘2초’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사 입장으로서는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서서 말하기 시작했을 때의 ‘최초 2초간’이 핵심적인 순간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똑바로 환자 얼굴을 보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 사람은 같은 화제를 몇 번이고 되풀이할 사람인가, 또는 가족을 둘러싼 세상이야기를 끝없이 펼칠 것 같은 예감이 들면 그 순간부터 경계 태세에 들어간다.

그러나 대화 도중에는 절대로 상대방 말을 무시하지 말고 충분히 듣고 공감하는 태도를 표시한다. “그렇군요. 눈이 빙빙 도는 것처럼 어지러우시군요”라는 등 맞장구를 치는 말만 해도 충분하다. 의사가 공감해준다는 사실만 확인해도 환자는 만족하고 용기가 치솟는다.

그런 다음에 비로소 “잠시 이야기를 정리해 볼까요”라면서 말 중간에 비집고 끼어든다. “환자분이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이런 이야기가 아닌가요?”라고 요점을 정리해준다.

만약 이것이 환자의 의중을 적중한 것이라면 환자는 크게 안심을 하면서 “바로 그렇습니다. 선생님”이라고 한 뒤 이야기 보따리를 거둘 것이다.

환자에게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다
전문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환자가 의사에게 바라는 진료시간은 ‘10분 이상’이다. 그런데 정확히 10분만 배정된 진료로 이 환자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도 의사가 환자의 수다를 조심성 없이 듣기 시작해 실제로 말이 길어질 무렵에야 “늘어놓는 수다 때문에 질렸다”는 표정으로 제대로 대꾸조차 안하거나 환자의 이야기를 정리해주지도 않고 무턱대고 말문을 막았다면 환자로서는 “의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제대로 다하지 못했다”는 불만과 아쉬움이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본란의 독자 여러분은 앞서 설명한 ‘방해의 원리’를 퍼포먼스학의 기술대로 슬기롭게 실천해 환자의 횡설수설을 적절한 선에서 잘라내는 기량을 갖도록 연마하기 바란다.

이 문제만 제대로 처리할 수 있다면 환자에게는 전혀 불만이 남을 리 없고 진료도 효율성 있게 진척될 것이므로 부디 한 번 응용해보기를 권유한다.

[오늘의 강의 요약]
1. 2초 사이에 상대방을 판단하는 ‘적응성 무의식력’을 연마한다.
2. 환자 말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는 자세를 나타낸다.
3. 환자 대신하고 싶은 말을 알기 쉽게 요약해주면 환자 만족감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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