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감기환자에게 체중 감량 권했다가 콧방귀 세례
음주벽 중년여성 배경엔 가정불화, 배려의 한 마디가 열쇠

일본대학 예술학부 교수·심리학 박사|사토 아야코

사람의 눈빛이나 말솜씨, 태도에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자타가 모르는 사이에 자기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진료현장에서 의사가 환자와 친밀한 신뢰관계를 구축하려면 어떤 퍼포먼스를 갖춰야 할까. 의료현장의 질문에 이 분야 전문가가 Q&A 형식으로 해설한다.

Q. 살찌고 음주량이 많으며 간기능장애까지 있는 한 여성 환자가 감기 때문에 진료를 받았다. 진찰 끝에 “살 좀 빼시는 편이 좋겠어요”라고 충고했는데 나중에 그 환자로부터 ‘감기치료를 받으러 갔더니 뚱보라는 모욕을 당했다’는 항의편지가 원장 앞으로 날아왔다. 해도 너무한 클레임이라고 생각한다. (40대, 내과근무의 B)

A. “살 좀 빼시는 편이 좋겠어요”라고 말한 B의사의 어드바이스 자체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는데도 환자는 어째서 원장 앞으로 항의편지를 보내는 행동을 취했을까.

문제는 B의사가 환자의 비만과 과음 습관에 이르게 된 배경에 대한 배려의 말 한마디를 못했다는 단순한 한 가지 이유로 요약할 수 있다. 이 환자에게는 비만이 오랫동안 피할 수 없는 고민거리일 수도 있고 다른 고민 때문에 비만증에 이른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정이나 직장에 대한 욕구불만 때문에 먹는데 집착하게 되는 과식증으로 체중이 비대해질 수도 있다. 남에게 ‘뚱보’라느니 ‘과체중’이라는 말을 들으면 큰 상처를 입기 때문에 손상된 마음을 달래느라 알코올에 의존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결코 드물지 않다.

B의사가 이 여성 환자에 대하여 “우선 감기부터 확실하게 치료합시다. 그런데 따로 몸에 이상은 없습니까?”라고 넌지시 화두를 꺼낸 뒤 비만문제로 화제를 돌렸더라면 ‘모욕당했다’는 끔찍한 반응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음주벽의 원인을 캐보니
실상 나 자신도 B의사와 똑같은 경험을 한 일이 있다. 필자의 친구이자 간부교육 연수 강사를 맡고 있는 교양 있는 여성이 왕년에는 한 때 심한 알코올중독증 이였다. 심할 때는 ‘침실이 있는 이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기가 무섭다’느니 ‘길을 걸으면 전신주가 나를 덮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긴다’는 등 걸핏하면 횡설수설하곤 했다.

이 여성은 자택에 머무는 동안 수시로 음주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시간 감각도 뒤틀렸다. 오전 1시나 2시 등 한밤중에 나뿐만 아니라 몇 몇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긴 하소연을 늘어놓기 일쑤였고 직장 내에서도 문제시 됐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당사자인 이 여성에게 내가 어느 날 “무엇보다도 음주량을 줄여야 한다. 술 생각이 나면 꾹 참고 약초로 된 허브티라도 마시고 일찍 잠들도록 힘써보라”고 조금 따끔하게 어드바이스를 했다. 그러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 친구가 울컥 울음보를 터뜨려 흐느끼면서 나를 얼싸안은 채 뜻밖의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여성의 남편은 유명한 재벌기업의 엘리트 사원으로 생활에는 아무런 불편도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심신의 컨디션이 나빠졌고(아마도 갱년기장애라고 생각됨) 이를 이해 못하는 남편이 잔소리를 하거나 때로는 큰소리로 짜증을 낸다는 것이다. “이런 신세인데 알코올 말고 도피처가 어디 있는가”라고 나에게 거꾸로 따져 물었다.

이 여성의 경우 음주량은 많았지만 몸은 마른 편이어서 나는 그 점도 걱정이 됐다.  남편의 짜증과 역정 때문에 식욕을 상실하고 술에 의존해서 시름을 견디는 것이 틀림없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카운슬링 전문가이기도 한 내가 그녀의 가정 속사정을 자세히 듣기로 했다.

몇 차례 그녀의 하소연을 듣고 나니까 그녀가 음주를 거듭하는 까닭이 남편에 대해 입으로 토로할 수 없는 불만과 함께 자신이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감이 겹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숨은 원인을 캐내자 자기 스스로 깨닫게 된 그녀는 자연히 술을 끊게 됐다. 나도 이 친구의 남편에게 “외람된 말씀을 드립니다만”이라는 한 줄을 전제로 쓴 편지를 보내서 그녀의 속내를 알리는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후 이 여성은 알코올중독증을 완전히 극복했다. 지금은 반대로 내가 난처할 때 바로 곁으로 달려와 나를 도와준다.

“참 힘드시겠군요”라는 말 한마디
아마도 B의사가 진찰한 여성 환자의 경우도 항의편지를 쓰게 될 만한 숨은 속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상당히 비만체질인데다가 술을 못 끊는다면 이 환자 자신도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감기가 걸렸다는 것은 병원을 찾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고 실상은 의사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청하고 싶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뇨병치료가 전문인 B의사로서는 감기에 걸렸다는 환자에게 단순히 감기약을 처방할 뿐 아니라 비만과 음주문제에도 주의를 시키고 싶었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전에 “늘 바쁘신 것 같은데 참 힘드시겠군요. 조금 피곤해보이시는데 달라진 증상이 있습니까? 드시거나 마시는 음식 분량이 늘지 않았나요?”라고 말을 건넸어야 한다.

의사로부터 이런 지적을 당하면 “아니요, 괜찮습니다.”라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환자도 있다. 반면에 “사실은 선생님...”하고 다가서면서 왜 자기가 술을 과음하게 됐는지 말문을 트는 환자도 있을 것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허심탄회하게 이런 대화가 오고간다면 환자는 의사를 신뢰하게 될 것이고 서로 허물없이 대화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가 구축될 것이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The Claimer is the Customer’(클레이머 야말로 참된 고객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의료의 세계에서도 같은 격언이 통용될 것으로 믿는다.

[오늘의 강의 요약]
1. 환자는 자신이 호소하는 증상만 치료받기 위해 내원한다고 단정할 순 없다.
2. 환자 호소의 뒤편에 숨은 배경에도 배려하자.
3. 우선 한 마디, 환자의 처지에 동정하는 말 한 마디를 건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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