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로 경직된 환자의 굳은 표정, 힐끗 쳐다본 뒤 시선을 떨 군다
중년 발레교사에게 ‘함부로 도약하기 전엔 무난한 요법’ 권하다 봉변

일본대학 예술학부 교수겸 심리학 박사 사토 아야코

사람의 눈빛이나 태도에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자타가 모르는 사이에 자기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진료 현장에서 의사가 환자와의 친밀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려면 어떤 퍼포먼스를 갖춰야 할까. 의료현장의 질문에 이 분야 전문가가 Q&A 형식으로 해설한다.

Q.변형성 고관절증(osteoarthritis of hip joint) 때문에 진찰받은 50세 여성에게 ‘완치되려면 수술이 필요하나 재활요법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치료됩니다. 뛰거나 솟구치거나 도약(跳躍)을 삼간다면 무난히 일상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요’하고 설명을 하자 갑자기 환자 얼굴이 분노와 울화가 치미는 표정으로 바뀌더니 ‘선생은 나를 무엇으로 봅니까?’라고 소리 지르면서 받아쳤다. 올바른 설명을 성의껏 했는데 무엇이 잘못되고 불만인지 전혀 감이 안 잡힌다. (40대, 정형외과 개원의)

A.정형외과 U원장의 하소연을 듣고 나도 엉겁결에 실소해 버렸다. 나 자신도 환자인 50세 여성과 전적으로 동감이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진료실 대화에서 A환자가 관심을 두고 문제 삼을 것은 변형성 고관절증의 치료만이 아니었다. A환자는 삶의 질(QOL)을 그전처럼 정상 수준으로 유지하고 싶다는 강력한 욕구를 갖고 있다. 자신의 오랜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는 자율욕구 또는 질서욕구는 모든 인간에게 뿌리 깊은 원초적인 욕구이다.


분노하면 표정 근육이 경직돼 멈춘다
U의사가 부족했던 점은 환자의 일상생활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깊은 통찰력.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존중하는 마음이다.

만약에 A환자가 자택에서 할 수 있는 가사와 회사에서 일반적인 사무에 종사하는 평범한 주부나 여사무원이었다면 전철역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수준이라도 충분히 ‘보통 생활’을 영위한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A환자는 오랫 동안 고전 발레 교실을 이끌어 왔으며 학생들과 무용계에서 ‘50세 나이에 저렇게 무용할 수 있다니’라는 감탄과 선망의 대상이였기 때문이다.

U의사도 이와 같은 A환자의 직업을 여러 차례의 진료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뛰거나 솟구치거나 도약을 삼간다면’ 이라는 무용가의 기초 동작을 봉쇄하자는 대전제를 내걸었으니 애절한 환자의 희망을 완전히 저버리는 말이다. A환자가 ‘해도 너무한다. 당신이 의사인가!’라는 울화가 치민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 고비에서 가령 U의사가 A환자 얼굴 표정만 자세히 지켜보면서 대화를 했더라면 사건은 여기까지 꼬이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은 마음속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표정을 움직이는 근육이 경직되고 올스톱 된다. 평균적으로 1분에 28초 정도 활동하는 몇 줄기의 굵은 표정근(表情筋)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면 얼굴이 굳어진 느낌으로 변모하게 된다. 시선은 상대방의 눈을 힐끗 똑바로 쏴본 뒤에 바로 초점을 바꿔 자기 손가락 끝이나 주변 서류 등을 바라보는 시늉을 한다.

이때의 눈초리는 찌르듯이 매섭고 그 후에 밑을 바라본 다음에는 두 번 다시 상대방 시선과 마주치지 않도록 피할 것이다. 그 목소리는 분노 때문에 잘게 떨리거나 반대로 풀죽은 음조로 바뀌어 말꼬리가 땅에 꺼지듯 가느다란 소리로 변한다.

Para-language(周邊言語)에 주목하라
이 처럼 대화하는 말에 관계되는 목소리의 볼륨, 스피드, 숨소리, 어조와 억약 등이 모두 어우러져 파라랭귀지(Para-language; 周邊言語)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대화용 언어를 둘러싼 주변에 깔린 음성 요소라는 뜻이다.

톡톡 튕기는 탄력적인 높은 목소리와 또박또박 끊기는 리듬으로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음성 등, 환자가 진료실에서 대답하는 목소리의 어조로 미루어 의사는 설명내용이 잘 납득했는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U의사가 ‘완치하자면 수술이 필요하나 재활요법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치료됩니다’ 라고 말했을 때 ‘어느 정도’라고 한 말을 A환자가 그냥 흘리거나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어느 정도’라는 단어가 들리는 순간 A환자는 힐끗 U의사의 얼굴에 날카로운 시선을 쏘아 붙였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 발 더 나아가서 ‘뛰거나 솟구치거나 도약을 삼가 한다면’이란 말이 쏟아진 순간 A환자의 두 눈 빛은 분노로 번쩍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U의사는 둔감하게도 A환자의 이런 변화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더욱이 U의사는 한 술 더 떠서 ‘사회생활에서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요’라고 덧붙였다는 후문이다. 불씨에 기름 끼얹는 말에 대해 A환자 입장에서는 ‘내가 바라는 치료는 사회생활 수준이 아니다’라고 외치고 싶어진 것도 당연한 노릇이다.

의사는 환자마음 다스리는 천직
생활의 배경은 환자에 따라서 각양각색 이다. 이에 따라 환자가 기대하는 QOL의 수준도 고차원에서 낮은 단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이런 환자들이 제각기 추구하는 QOL 수준에 주파수를 맞춘 통화방식을 택해야만 비로소 의사와 환자간의 진료실 대화가 소통되며 의사는 환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걸을 수만 있다면 괜찮다’는 치료수준이라면 A환자가 굳이 치료 기술이 우수하다고 소문 난 U의사를 일부러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사는 환자의 육체적 이상과 질병을 고칠 뿐 아니라 환자의 마음이라는 매우 예민하고 섬세한 부분까지도 다스려야 하는 천직이다. 의사가 육체적인 치료에는 성공했어도 환자의 기대치가 훨씬 더 높고 의사와 환자 사이의 욕구차원이 다른 경우에는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이런 경우 예컨대 똑같은 말솜씨를 부려도 어떤 환자에게는 만족을 주고 다른 환자로부터는 원망을 살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의사는 대화를 하는 중에 수시로 상대방의 욕구 수준과 만족차원을 제대로 신속히 읽어내는 기량이 필요하다.

U의사에게는 진료하는 환자의 일상생활과 라이프스타일을 잘 이해하고 이에 걸맞은 화법을 구사하도록 힘쓸 것과 모든 대화를 끝낸 뒤가 아니라 설명 도중이라도 환자의 표정, 동작, 목소리의 억양과 리듬, 숨소리와 성량 등, 요약하자면 ‘파라랭귀지(주변 언어)’까지도 세심히 관찰하고 말을 신중히 골라가면서 대화를 하면 앞으로 A환자에게 당한 것 같은 봉변은 모면할 것이라고 따끔히 어드바이스 했다.

[오늘 강의의 요약] (Today's Summary)

1. 환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는 마음을 잊지 말 것.
2. 환자의 표정과 말솜씨에 나타나는 불신과 불안을 놓치지 말 것.
3. 환자가 기대하는 QOL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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