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배우 연기처럼 진료실 의사도 직무 연출기법 중요
환자를 보는 눈초리 말투 표정에 의사의 관록이 스며난다

일본대학 예술학부 교수겸 심리학박사 사토 아야코

사람의 눈빛이나 말솜씨 태도에는 숨은 메시지가 있다. 자타가 모르는 사이에 자기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의사가 진료현장에서 환자와 친밀한 신뢰관계를 구축하려면 어떤 퍼포먼스(직무수행태도)를 갖춰야 할까. 의료현장의 질문에 이 분야 전문가의 대답을 Q&A 형식으로 풀어본다.

Q. 최근 2년간 환자수가 감소 중이며 특히 새로 내원한 신환자의 이탈이 빠른 것이 고민거리이다. 한편 다이토구(台東區) 우에노에서 개원 중인 친구 K의사는 실력이 뛰어나지 않는데도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더듬는 말투가 환자 확보의 비결 같지는 않는데 ‘K선생은 설명을 잘해준다’라는 입소문을 듣고 있으면 속이 편치 않다(40대, 내과의)

A. 내과를 개원 중인 P의사가 위와 같은 걱정거리 때문에 친구 소개를 받아 찾아온 것은 두 달 전 일이다. P의사는 “평판 좋고 잘나가는 친구 K의사를 찾아가 최근의 의료기술 문제로 대화하면서 ‘나중에 내 의원의 직원들에게도 구경시켜 학습시키고 싶다’는 구실로 대화 중 그의 모습을 VTR카메라로 촬영해왔다”면서 비디오녹화까지 들고 와 진지한 모습으로 도움을 청했다.

이렇게 화두를 꺼낸 P의사는 잘생기고 복장도 단정하다. 그러나 어쩐지 자세가 나쁘다. 등을 고양이처럼 앞으로 구부리면서 응접실 소파에 털썩 앉은 모습은 ‘아 피곤하다’하는 속내를 그대로 표출하고 있다.

얼굴은 나무랄 데 없이 핸섬하지만 표정을 나타내는 얼굴 근육을 까딱도 안하고 무표정하게 시선을 밑으로 깐다. 아래쪽으로 기운 얼굴 각도를 유지하면서 때때로 안경테 너머로 힐끗힐끗 내 얼굴을 날카롭게 치켜본다.

P의사가 몸 전체로 부터 내뿜는 아우라(aura: 사람이 주변에 발산하는 영기(靈氣), 후광(後光))는 한마디로 ‘마이너스 정서(情緖)’. 더 쉽게 말해서 ‘궁상(窮相)맞다’ ‘방정맞다’는 이미지다. 이래서야 진료 받는 환자가 압박감이나 불안감을 안 느낄 수가 없으리라는 점을 당장 눈치 챌 수 있었다.

반면에 그가 들고 온 K의사의 비디오 화면은 불과 10분간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의 태도가 충분히 퍼포먼스학의 교재로 쓸 수 있을 만큼 좋고 플러스 내용으로 충만해 있었다.

K의사는 P의사보다 2년 선배인데도 대화 중 두 차례나 “P선생도 잘 아시겠지만 굳이 말씀드리자면”이라는 예의바른 전제를 써서 그가 결코 P의사보다 놓은 위치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겸손한 태도를 나타냈다. 더욱이 인상적인 점은 그의 얼굴 표정이다. 설명할 때는 상대방 얼굴을 똑바로 보고 두 눈과 시선을 마주치는데 그 시간이 보통사람의 평균치를 가볍게 능가하는 길이 었다.

전문적으로 이같은 응시(凝視)를 ‘아이컨택트’라고 부른다. 나의 실험 데이터상으로는 일본인이 1분간 대화 중에 상대방의 두 눈을 직시(直視)하는 ‘아이컨택트’ 시간은 평균 32초. 바로 이 행위가 상대방을 납득시키는 설득력의 뿌리가 된다.

그뿐 아니라 입가를 감도는 되바라지지 않는 작은 미소(smile)가 K의사 표정의 특징이다. 이것은 자신감과 마음의 여유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눈앞에 있는 상대방에게 친밀성의 표현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것을 퍼포먼스(Performance)학에서는 ‘친화표현(親和表現: affiliation performance)’ 이라고 부른다.

지미 카터 스마일이 천하일품
입술의 양쪽 끝자락(口角)을 살짝 쪼이면서 위를 향하게 만드는 표정은 보조개가 나타나지 않아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 였다. 상대방은 이런 표정을 보면 경계심을 풀고 친근감을 느끼며 때로는 실천 의지를 촉발하기도 한다. 새로 대하는 환자에게 의사가 무언가 설명하려 할 때는 안성맞춤인 표정이다.

그래서 나는 P의사에게 의원 경영에 성공한 K의사를 본받아 상대방의 두 눈을 지켜보면서 가볍게 스마일 하는 진료자세를 제안했다.

나는 ‘퍼포먼스학’을 전공했다. 퍼포먼스학은 듣기에 생소한 학문이지만 자기표현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사회심리학과 연극학이 합쳐진 분야이다. 일본 나가노현(長野縣)태생으로 1980년 미국 뉴욕대학 대학원을 마치고 귀국해서 일본에서 퍼포먼스학을 전수하기 시작한지 벌써 30년이 됐다.

시작 당시 모두 냉담한 반응이었지만 지금은 국제화 추세 글로벌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이 학문의 호용가치가 인식되기 시작됐다. 정치가, 경영자, 의사, 약사에 대한 강연과 개인 지도 신청이 쇄도해 이 분야의 개척자로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지금 와서 의사에게 퍼포먼스학이 권장되는 것일까.
진료실은 한마디로 환자와 의사가 함께 창출하는 자기표현의 무대(stage)이다. 1990년대, 20년 전에는 환자가 의사선생님 앞에서 제대로 하고 싶은 말도 못하는 처지였지만 지금은 환자의 권리가 널리 인식되고 있다. 환자 자신도 스스로 ‘제대로 진료 받을 수 있는 권리’에 깨어났고 수틀리면 의료소송도 쉽게 제기되는 시대로 바뀌었다.

반면에 의사의 상황은 어떨까. 개원의는 치열한 경쟁 아래서 일상적인 진료와 의원 경영의 중압감 때문에 ?기는 신세이다. 병원 근무의사는 다수의 환자 집단을 시간 내에 소화하려고 격무에 시달린다. 의료현장에서는 ‘더 이상 환자가 늘면 과로사 할 것’이라는 비명소리도 들린다. 그러니까 이런 처지 일수록 의사는 ‘퍼포먼스학’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자기표현은 어떤 모든 의미의 의도와 연기성을 수반한다. 환자와의 짧고 간단한 대화와 접촉에서 그 뒤에 숨은 ‘참된 욕구’를 재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환자의 니즈에 가장 적합한 자기표현을 의사가 전개할 것. 이것이 진찰시간을 단축시키는 동시에 진료의 효율화에 직결된다. 그리고 나아가서 환자 만족도 까지 향상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가령 의사의 질문에 환자의 대답이 ‘그만 그만하다’ 라는 단 한마디 일 때를 예를 들면 그것이 통증을 참을만해서 ‘그만 그만하다’인지, 아니면 ‘그만 그만하게 나아졌다’ 는 감사의 뜻이 함축된 말인지를 제대로 분간된 후에 피드백하는 방식이 결정되고 대화의 효율성과 환자와의 신뢰단계가 바뀌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의사가 말해주려는 진단내용이 제대로 정확하게 환자에게 전달되는지, 그리고 환자는 그것을 호감적으로 수용하는지. 이처럼 진료현장에서 중요한 열쇠가 되는 요소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의사가 터득해야 할 ‘퍼포먼스학’의 진수(眞髓)인 것이다.

[오늘 강의의 요약] (Today Summary)

1. 의사도 퍼포먼스(연기연출, 자기표현) 능력이 필요하다.
2. 환자는 의사의 진단결과를 듣기 전에 의사의 관록이 스며나는 자기표현을 지켜본다.
3. 진찰실은 환자와 의사가 상호 자기표현을 하는 무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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