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110년 노후한 의원 구출한 醫業 4대 계승자의 활약
병원보 발행해 홍보하고 인사조직, 회계관리 개선해 흑자 전환

의료법인 나카노회 나카노(中野)정형외과(아이치현 한다市)

2004년 부친이 경영하는 나카노의원(현 나카노정형외과, 아이치현 한다市)의 뒤를 잇기 위해 아버지 밑에서 근무의사로 진료를 시작한 나카노 신이치로(中野 眞一郞: 현 원장겸 의료법인 나카노회 이사장)는 당시의 경영 실태에 대해 ‘외래환자수가 상당히 적다’는 첫인상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1901년 신이치로의 증조부가 개원한 나카노의원은 새해가 개원 110주년이 되는 의료계의 ‘노포(老鋪)중의 노포’라고 손꼽히는 유서 깊은 의료기관이다. 1975년에 3대째인 부친이 의원 형태를 25병상을 갖춘 병원으로 확장시키고 대퇴골, 경부골절 등 연간 60~70건의 수술을 시행하면서 입원실 병상이 항상 만원이며, 하루 외래환자수가 200~300명의 인기병원으로 성장시켰다. 일찍이 재활치료도 도입해 환자의 조기퇴원도 도왔다.

그러나 부친이 고령이 되면서 환자수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2000년 즈음에는 병상가동률이 70% 이하로 감소했고 외래환자수가 하루 60명에 못 미치는 날도 있었다. 더욱이 의사와 간호사 부족난에 빠져 2003년에는 병상 6개를 반환하고 유상의원(有床醫院: 일반 19병상)으로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제4대의 젊은 나카노가 돌아와 환자수가 조금 늘기는 했어도 안심할 처지는 아니었다. 경상수지로는 근소한 흑자였지만 계속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경영위기에 빠질 것이 뻔한 노릇이었다.

환자 모집과 단가 상승대책 강구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다’. 이렇게 생각한 4대째 나카노가 고령의 부친을 대신해서 실질적인 경영자가 되어 개혁에 앞장섰다. 우선 급한 일은 바닥으로 떨어진 환자수를 늘리는 일이다. 옛 부터 단골인 근처의 고령자들만 찾아오는 상태였기 때문에 ‘신규환자를 늘리지 못하면 앞날은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의원의 부분적 보수 작업에 착수했다. 40년도 넘은 건물은 구식이고 이미지도 좋지 않았다. 그 부분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길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보수공사에는 자금이 필요했다. 모아둔 자금이 없어 금융기관의 융자를 신청했지만 경영상태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기 일쑤였고 융자교섭에 난항을 겪었다. 결국은 원장이 세대 교체된 점 등을 감안해 겨우 2000만엔의 융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자금으로 환자대기실과 접수카운터의 인테리어를 바꾸고 비가 새는 병실을 보수했지만 낡은 외관 개장까지는 손이 미치지 못했다. 이렇게 급한 대로 응급처지가 이루어졌다.

나카노는 자신의 진료태도 개선에도 힘썼다. 길어지기 쉬운 고령환자의 넋두리 섞인 호소를 싫은 내색 없이 받아주면서 진료했고 검사결과 이상이 없어도 X선 사진을 직접 보여주면서 문제가 없는 이유를 설명하여 환자 만족도가 조금이라도 높아지도록 노력했다. 이런 고생을 한 보람으로 신규환자의 수가 늘어 2005년도에는 하루 내원 환자수가 평균 120~130명으로 늘었다.

한편 수입을 늘리기 위해 진료단가 상승에도 힘을 쏟았다. 구체적으로는 3대째인 선친의 진료시대에 평가가 좋았던 개별 재활치료의 활성화를 도모했다. 외래환자에게 소염진통치료뿐 아니라 재활치료까지 실시하면 정형외과의 재활치료 보험진료요금(당시에는 이학요법Ⅰ항목)을 추가 산정할 수 있어 진료단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재활치료를 시행하면 환자 회복이 빨라지기 때문에 환자 본인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 환자에게 즐기면서 재활치료의 의욕을 높이도록 뒷받침하려고 기능훈련실로 이어지는 통로 벽에는 재활훈련 담당직원들의 얼굴 스케치와 격려사를 담은 자작 포스터를 내붙였다.

2006년 젊은 나카노가 정식원장으로 취임했지만 경영이 순탄치 못했다. 2007년 재활치료 직원 5명이 잇달아 퇴직해 겨우 재건되려는 재활치료 체제가 무너졌다. 인력부족으로 재활환자 수가 감소되고 진료단가도 하락돼 경영이 또다시 어려워졌다.

‘대책을 강구해야 하겠는데’. 타개책으로 나카노는 개호노인시설에서 근무 중이던 30대 젊은 이학요법사(PT)를 재활치료부서 책임자로 발탁했다. 책임감과 의욕을 북돋아주고 그 PT출신의 양성교육기관에서 신인을 추천받아 채용해 후배 육성을 일임했다. 이것이 효과를 거두어 2008년 4월부터 리허빌리 담당 직원 수가 5명으로 확보돼 체제가 안정됐다.

경영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서비스도 강화됐다. 외래환자 외에 입원환자들에게 의원이 개선해야할 문제점을 물어보는 개별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대기시간을 개선 해주기 바라는 목소리가 많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기다림 때문에 밀리고 있다’는 느낌을 완화시키려고 아이디어를 짜냈다.

대기실에 TV, 신문 잡지 뿐 아니라 ‘원내보(院內報)’ 클로바를 비치한 것이 대표적인 일례이다. 처음 내원한 환자나 간병인을 따라온 가족에게 이 의원의 오랜 역사 등을 알리고 진료방침을 소개하는 원내 간행물이다.

그리고 연간 3~4회 개최하는 환자수발에 관한 ‘개호교실’등의 이벤트 안내도 파일로 묶어서 대기시간에 환자와 그 가족이 읽도록 매거진 랙(magazine rack)에 꽂아둔다. 진찰을 기다리는 불안초조감을 해소하는 동시에 의원PR, 신규환자모집 효과도 노렸다.

그리고 진료비 납부 회계업무와 처방관련 시간 등을 조금이라도 단축하기 위해 요통 등 정형외과의 흔한 처방을 어느 정도 표준화하고 사무직원이 이것을 보험청구명세서 전용컴퓨터에 입력할 때 업무 간소화를 할 수 있도록 돕는 등 작은 노력을 꾸준히 쌓아왔다.

나카노는 수입 증대책과 병행해서 조직체제도 정비했다. 우선 각 부서에서 애매했던 부장, 차장, 주임 등의 직책과 이에 따르는 부담을 명확히 규정하고, 인사고과 기준도 책정해 승급에 평등성을 보장했다.

그리고 2007년도에는 개인경영 의원이었던 나카노의원을 노건시설(노인보건시설 : 증상이 안정적인 고령자를 위한 시설. 병원과 재택, 병원과 특별양호 노인홈의 중간적 존재이다) 등을 운영하는 의료법인 나카노회(中野會)산하로 통합, 조직 간의 인사교류를 하기 쉽도록 만들었다.

계수 관리도 강화했다. 주인급 이상인 18명(법인그룹의 관리직 포함)이 참석하는 월 1회의 부장회의에서는 내원환자 수와 진료 단가 등 각종 경영지표의 실적과 전년도 같은 달의 비교치를 공표했다. 재활치료부서의 직원 1인당 치료실시 단위 수 등을 분석해 제시하고 다음 달부터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등을 협의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입원환자 수 증가 대책에도 착수
일련의 경영개혁 덕분에 나가노정형외과의 2010년 3월기 업적이 의업수입은 전기 대비 11.9% 증가인 3억3000만엔, 경상이익이 2.5배 증가인 1000만엔으로 튼실해졌다. 금년 4월에는 토지 차용계약이 만료된 노건시설을 약 10억엔 들여 의원 근처로 이전해 다시 오픈할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현재의 당면과제는 입원환자의 확보이다. 종전에는 그룹 내 연대 협력 태세가 갖춰지지 못했다. 노건시설이나 관련 법인이 운영하는 특별양호노인홈의 입소자가 갑자기 용태가 나빠져도 나가노정형외과는 거의 환자 수용을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룹(의료법인 나카노회)산하 간호사끼리 회의를 소집하고 정보교환을 긴밀히 유지하므로써 산하기관 입원환자 수용을 촉진하는 개선방안을 강구했다.

한편 급성기병원에서 수술 후 정형외과 환자를 소개받아 수용하는 숫자를 증가시키려고 한다(半田)시 시립한다병원(아이치현)의 연대회의에 의원의 직원을 출석시키기로 했다. 그런 결과 최근 2~3개월 평균 재원일수(在院日數)는 30일 전후를 유지하면서도 병상가동율은 종전의 70~80%에서 90%이상으로 개선되는 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처럼 경영위기를 패기와 개혁으로 구출한 110주년 낡은 병원의 4대째 나카노 원장은 “앞으로 노후화된 의원건물을 리뉴얼하는 것이 꿈”이라면서 가슴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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