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동북부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공식적인 사망자만 1만여 명에 달하고 사실상 살아있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종자를 더하면 2만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무너져 내리던 집과 건물들, 시커먼 빛깔의 쓰나미가 덮치던 참혹한 장면을 TV로 보면서 마치 혈육이 다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는 곧 당황하게 된다. 역사를 통해 일본은 우리 민족에게 씻어지지 않는 치욕과 상처를 준 나라다.

멀리는 임진왜란부터 최근의 독도 영유권을 갖고 벌이는 터무니없는 영토주장, 잊을만하면 시리즈를 이어가는 망언들까지.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것은 36년 식민지 세월의 굴레가 아닌가.

당황스러웠던 두 번째 이유는 최근 몇 년 사이 중국 쓰촨 대지진, 아이티, 칠레, 동남아 쓰나미 심지어 미국에서 일어난 엄청난 재난과 비극의 현장을 목도하면서도 이들에게 느꼈던 슬픈 감정과의 형평성 때문이다.

이들 나라에서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삶의 터전을 잃었지만 그때의 안타까움은 인류애로 설명되는 정도일 뿐, 지금처럼 일본에 느끼는 연민만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감정적 혼란은 우리 사회의 반응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정부의 즉각적이고 파격적인 지원 조치와 내용과 속도에서 선도적인 많은 한류스타들의 기부 릴레이, 공중파를 포함한 모든 언론매체엔 위로의 글이 넘치며 전국적인 성금 모으기가 전개되고 있다.

심지어 정신대할머니까지 나섰다고 하는 것 아닌가. 도대체 이런 현상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국인의 유전자가 전 세계 민족 중 일본인과 가장 가깝고 비슷하게 생겼다는 과학계의 연구결과 때문인가. 아니면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여서, 그도 아니면 재야 사학자들이 주장하듯 고대국가인 부여를 공동의 조상으로 하는 한겨레라는 결과를 받아들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북한은 가까운 게 아니라 그 자체로 한민족이고 한 땅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그들이 말하는 고난의 행군 시절, 수많은 아사자가 나오고 형용하기조차 끔찍한 참담한 일이 있었어도 지금과 같은 우리 사회의 온정은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일본은 미국과 함께 우리 국민에게 현존하는 가장 큰 위협인 북한의 핵에 대응하는 최고 수준의 동맹국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미 G2 국가로 무섭게 부상한 중국이 혹시라도 언젠가 중화 패권주의의 길로 들어설 경우 가장 믿을만한 혈맹국가일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설명되는 것은 가장 미워했던 것과의 화해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미워하는 일은 그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크게 부담을 수반하는 일이다. 미워했던 대상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화해의 손길을 건네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가슴 속 묵은 부담을 털고 양국 사이가 진심어린 우정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심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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