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가운 속에 정장차림은 환자에 대한 경의 표시
환자 순식간의 ‘Glimpse Bite’로 주치의를 평가

일본대학 에술학부 교수, 심리학 박사 | 사토 아야코
 
 
사람의 눈빛이나 말솜씨, 태도에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자진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진료현장에서 의사가 환자와 친밀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려면 어떤 퍼포먼스를 갖춰야 할까. 의료현장의 질문에 이 분야 전문가가 Q&A 형식으로 해설한다.
 
 
Q. 디지털문화 영향 때문인지 정치가들조차 간편한 평복차림의 캐쥬얼 웨어 스타일이 흔해졌는데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는 의사가 백색 위생복 속에 반드시 흰 와이셔츠 넥타이 차림을 하는 것이 철칙이다. 의사에게 중요한 것은 전문가로서의 실력인데 복장문제는 좀 더 자유롭고 여유를 주어도 되지 않을까? (30대, 피부과 근무의)
 
A. 대학병원 피부과에 근무하는 U의사로 부터 최근 위와 같은 내용의 질문을 받았다. 이 문제를 제기한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유감스럽게도 쉽게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캐주얼과 나들이 복장 
 동내 개원의의 경우 환자가 방문해서 진료를 받는 수진(受診)행동은 일상생활의 연장선상에 있다. 환자는 평상복대로, 다시 말해서 작업복이나 앞치마차림 그대로 동네의원을 찾는다.

이를 맞이하는 의사가 슬리퍼를 신고 노타이 차림이라고 해도 외관상 주객간의 균형이 어긋나지 않는다. 환자도 이웃집 숟가락 숫자까지 안다는 이웃주민 입장에서 집안 속사정까지 눈치 채고 있는 단골의사의 복장이 다소간 흐트러졌다고 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병원으로 무대가 바뀌면 사정은 달라진다. 환자는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와 낯선 장소를 찾아갔고 긴 시간 순번을 기다렸으며 어렵사리 진찰순번이 돌아온 것. 진료 후 요금납부 회계 과정까지 합치면 중요한 하루의 낯 시간이 모두 사용되는 중요 이벤트이다. 즉, 병원진료는 결코 일상생활의 간단한 연장행사가 아니다.

환자 감각으로 볼 때 대형병원을 찾아가는 통원 진료는 문자 그대로 ‘나들이’이다. 그래서 이에 어울리는 양복이나 원피스 차림에 외출용 구두까지 신고 방문하는 사람도 있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는 바로 이런 환자를 상대하게 되므로 모름지기 환자의 높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①성심성의 ②열성적인 열의 ③신빙성(Ethos: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에서 쓰였던 말로 사회정신, 신빙성 등을 뜻한다) 등 세 가지 덕목을 잘 파악한 뒤에 진찰에 임할 필요가 있다.
 
의상(衣裳)철학의 시각과 옷차림 
이때 잊어서는 안 될 일이 물품(Object)의 사용 방법에 의한 자기표현 방식, 측 오브젝티스(Objectics: 물품학)의 시각이다.

의사로서는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 그리고 검은색 가죽구두를 신어야 한다는 것이 편의성이나 참신성이 부족한 옷차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랜 전통으로 답습되어 온 이런 고루한 의사복장(흰 가운 속의 정장)은 삼복더위 속에서도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감을 유발하고 위화감을 품지 않도록 만드는 이상적인 스타일이다.

퍼포먼스학의 입장에서는 스피치 할 때 자기머리를 불필요하게 자주 만지거나 손발을 방정맞게 떠는 행위를 ‘노이즈(Noise: 잡음, 방해요인)’라고 부른다.

노이즈란 스피치(연설) 목적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동작의 총칭이다. 부적절한 복장과 쓸데없는 움직임도 역시 ‘노이즈’이다.

의사로서 가장 ‘노이즈’ 부담이 되지 않는 복장은 역시 한 마디로 오소독스(Orthodox: 정통파)다운 남성정장과 와이셔츠 넥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의사의 경우도 여성정장 차림. 여기서 오소독스란 오소리티(Authority: 귄위)와 같은 어원(語源)이며 ‘권위, 권력, 주어진 분야의 태두, 명인, 달인’을 뜻한다.

전통적이며 잘 손질된 바른 정장차림을 하고 눈부시도록 잘 닦인 구두를 신고 머리 손질이나 안경 준비까지 잘 갖추어진 모습. 이것이 바로 환자가 의사를 한 눈에 보고 신뢰해 의사설명에 이목을 집중시키도록 만드는 의사 본래의 외관(外觀)이다.

그런데 최근 모 잡지가 주관한 병원랭킹 표에서 성누가(聖路加)국제병원(도쿄都 츄오區)이 영예의 1위(베스트원) 병원으로 선정됐다.

이 병원의 히노하라 시게아끼(日野原 重明) 이사장은 평소에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커뮤니케이션(의사소통) 능력이다”라는 소신을 피력해왔다. 여기서 말하는 의사소통 능력에는 말과 동작 표정에 의한 것 뿐 아니라 의사 본인의 복장과 구두 관리 등 앞서 언급한 ‘오브젝티스’까지도 당연히 포함된다.

실제로 이 병원의 의사(남성의 경우)들은 항상 넥타이차림의 정장 위에 걸친 흰 가운의 모습으로 환자를 맞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의사 복장으로 환자에 敬意 표시
대학병원이나 큰 종합병원에서는 진료시간이 제한돼 환자와 의사간의 대화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이럴수록 환자는 짧은 시간 내에 담당주치의가 자기를 치료해 줄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의사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려고 애쓴다.

환자 본인은 병든 몸을 안고 정신적으로도 불안하고 예민한 상태이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자기가 의사로부터 과소평가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품고 있다. 이런 환자에게 의사가 허술한 복장과 슬리퍼를 신은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두 발이 산발돼 단정하지 못하거나 손톱이 자란 모습이면 환자는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 아닐까?’라고 판단해 버리기 쉽다.

필자의 실험데이터에서도 대면상대에 대한 판단에는 ‘글림프스 바이트(glimpse bite)’ 라고 불리는 순식간의 작용이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글림프스 바이트’란 용어를 직역하면 ‘순식간의 응시(凝視)로 물고 늘어진다’는 행위, 특 상대방의 정체(正體)를 번개처럼 쏴 보는 시각에 의해 평가하는 방법이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옷차림은 말로 무엇인가를 설명도 하기 전에 먼저 그 복장을 통해 상대방을 멸시한다는 메시지가 발신돼 버린다. 고급 보석점에서는 점원이 날씨가 춥지도 보석이 무겁지도 않은데 하얀 목장갑을 끼고 상품을 취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고급상품에 대한 배려는 물론이요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고객에게 ‘나는 정중한 대접을 받고 있구나’라는 호감을 주는 효과도 발휘한다.

이 때문에 의사는 환자에 대해 ‘당신은 매우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말 뿐 아니라 외관상으로도 확실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의사로부터 건네지는 따뜻한 말에 못지않게 의사의 복장과 몸단장 풍기는 분위기로부터 느껴지는 안도감 역시 환자에게는 어떤 명약(名藥) 못지않은 좋은 치료제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오늘의 강의 요약]

1. 의사의 복장은 환자에 대한 경의 표시이다.
2. 등잔 밑이 어둡다. 구두는 늘 깨끗이 닦아 두자.
3. 안경 등 악세사리 선택에서도 품위있는 센스가 신뢰감을 높이는 효과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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