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無知와 인턴의 순진성이 일으킨 진료 혼선의 현장
골반종양 등 수많은 부인과 진단의 열쇠 ‘性交痛’을 모르다니

H. LEE KAGAN (LA거주 내과전문의)

신출내기 인턴이 병리검사실 밖으로 나왔다. 그는 진료차트를 들고 상기된 표정으로 환자의 진료기록을 끝내려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가 발견한 사실을 알리려고 내 귀에 이렇게 속삭였다. “그 부인의 골반에는 종양이 있는 것 같아요.”

나는 고개만 끄덕인 채 차트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이 곳 미국 내 한 지방의대는 가끔 전공의들을 나의 내과 외래 진료실로 차례로 보내 로테이션 전공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대할 때마다 명석한 두뇌와 근면 성실한 자세에 늘 흐뭇했다. 내 곁에서 속삭이듯 보고하는 이 젊은이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나는 진료 기록을 마치고 그를 쳐다보면서 진단 내용을 정식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얼마 전 나는 이 새내기 의사에게 연례적인 건강진단을 위해 찾아온 50대 중년부인의 상담과 검진을 지시했었다.

“그 부인은 골반 부위의 불편은 아무것도 호소하지 않았어요.”라고 그는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도 복부 진찰을 통해 분명히 혹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이 덩어리를 쉽게 촉진할 수 있었고 부인 스스로도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고 보고했다. 더욱이 그녀는 하복부의 혹이 만져진 것이 벌써 몇 달째라고 실토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진찰을 받기까지 왜 그동안 방치해 왔는지 묻자 부인은 통증이 없어 걱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이게 말이 되나요? 부인은 아프지 않으니까 암이 아니라는 생각이잖아요. 사람들의 무지함에 기가 막히네요.”라고 한숨을 쉬었다. 나는 말없이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여성의 골반종괴 다양각색
하지만 여성의 골반종괴(骨盤瘤: Pelvic Masses) 진단의 종류와 증상은 많고도 다양하다. 우선 양성과 악성을 포함해서 골반에 생기는 종양부터 따져봐야 한다. 난소암(Ovarian Cancer)의 경우 그 증세가 상당히 진행되기까지는 아무런 증상이 없거나 있어도 눈치 채기 힘들만큼 미비하다.

위내 가스축적이나 미약한 통증 같은 증상은 염증성 위장장애와 같이 가벼운 질환으로 잘못 판단하기 쉽다. 마찬가지로 양성종양(Benign Tumors)도 외부에 증상이 나타나기까지는 모르는 사이에 상당한 크기로 자라난다.

골반종괴의 다른 흔한 원인 중에는 예를 들어 골반복막염(Pelvic Peritonitis) 때문에 더글라스와(Douglas pouch)에 농이 차서 더글라스와농양(Pelvic Abscess)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은 더글라스와에 파동성의 팽창된 덩어리로 감지되며 압통(壓痛)을 느낄 수 있다. 증상 의 정도는 종양의 크기에 비례한다. 거의 증상을 느낄 수 없는 것부터 배변장애까지 그 증상은 다양하다. 증상이 나타나기까지도 몇 주일에서 몇 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흔히 발열을 수반한다.

동맥류(動脈瘤: Aneurysm)처럼 동맥이 내압에 대한 저항력이 약화돼 혹처럼 확장된 상태가 골반이나 사타구니(groin)에 생길 수 있는데 골반 내에서 일어나는 골반종괴는 일종의 골반종양으로 감지된다. 동맥혈관과 관련된 이러한 골반종괴와 같은 혈관 이상은 진찰의사가 느낄 수 있는 파동성(맥박성)이 있는 특징을 가졌다. 때문에 만성적인 변비를 가진 환자는 좌측 회장(回腸, ileum)에 대변이 쌓이는 양상을 보이게 되고 경험부족의 신출내기 의사가 자칫 잘못해서 촉진 후 가늘고 긴 골반종괴가 존재한다는 오진을 내리기 쉽다.

깨우침의 禪問答 타이밍
나는 이 젊은 전공의가 담당환자에게 필요한 질문을 끝마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그 다음에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에 달려있다. 진찰실 문진에서 얻은 여성환자의 대답 내용과 그 신체를 살펴본 진찰 결과를 어떻게 연결시킬지가 두 번째 고비이다. 나는 그에게 문제의 골반종괴와 관련 있다고 믿는 증상(symptoms)이 있는지 알아냈냐고 물었다.

전공의는 “골반종괴와 관련된 덩어리(혹) 말씀이시죠?”라고 되묻고는 잠시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었다. ‘옳지, 깨우쳐줄 때가 왔구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까 보고대로라면 부인은 전혀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다고 했지? 부인의 배변습관이나 원인모를 체중감소 등 다른 변화는 없었나?”라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이상하혈(abnormal vaginal bleeding)은 없었나?” 이 대답 역시 “아니요”였다. “디스파레우니아(Dyspareunia)는 어때?” 내 질문에 전공의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아뿔싸! 이 용어를 모르는구나’.

의과대학에 진학해 의학 관련 교과과정을 공부하기 시작하면 의대생이 새롭게 배워야 할 학술용어와 관련된 단어가 10,000개에 달할 것이다. 의대생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수많은 신체조직의 각종 병명과 장기, 골격명, 그리고 생리학적·병리학적인 삼라만상의 현상과 메커니즘 명칭들이 있다.

예를 들면 목에서 음식을 삼킬 때 생기는 연하통(嚥下痛), 숨을 쉴 때 나타나는 호흡곤란과 호흡통증, 대변볼 때 뒤따르는 배변곤란증과 배변통 등이 있다. 그리고 이런 통증에는 디스파레우니아(여성의 성교곤란증, 有痛性性交) 즉 성교통(性交痛)도 포함된다.

나는 그에게 용어를 되풀이해서 들려줬다. “디스파레우니아 말이야. 성교통. 이 통증은 골반종양(Pelvic Tumors)을 포함해 수많은 부인과 질병에 수반되는 증상이지”. 그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란 듯이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래서 내가 되물었다. “뭐 잘못됐나?”.

‘여성을 해치는 행위가 아닌가요?’
그는 눈길을 딴 곳으로 돌리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성행위는 여성을 해치는 행위가 아닌가요?”. 순간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나는 진료실 안 공기가 몽땅 밖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심한 충격을 받았다. 분명히 ‘총명하고 근면 성실한’, 그리고 아직은 경험부족이지만 명색이 전공의인 이 젊은이가 여성에 관한 이런 엉뚱한 정보를 어디서 입수했단 말인가.

우리가 함께 지내기 앞서 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이 젊은이는 자기가 미국 아닌 해외의 어떤 나라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그 나라는 내가 알기로는 여성의 권리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관습으로 가득 찬 곳이다. 오랜 관습과 고루한 전통으로 묶인 그 나라에서 이런 고정관념을 물려받고 자유의 땅 미국으로 왔단 말인가.

아무튼 그가 해괴망측한 이성관을 어디서 터득했는지는 당장의 의료현장 상황에서 상관할 바가 못 된다. 그는 내 진료실에서 수련을 쌓으려고 와있고 지금 나는 그에게 내가 전공한 내과전문의 지식이 아닌 엉뚱한 커리큘럼을 가르쳐야 될 처지에 놓였다.

나는 여성의 성적특징(female sexuality)에 관한 일부 기본적인 사실들을 나열하고 그가 오해(misconeptions)한 부분을 바로 잡아주었다. 그런 뒤에 우리는 내가 그에게 예비검진을 위탁했던 중년부인 환자의 진단문제에 착수했다.

우리는 함께 병리검사실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이 수련의를 놀라게 했던 왼쪽골반부위에서 발견된 매우 단단하고 고정된 압통(壓痛)이 없고(non-tender), 비박동성(non-pulsatile)의 조직덩어리(혹)를 확인했다.

내가 독자적으로 진행한 병리검사를 통해서도 이 조직뭉치가 과연 어느 장기에서 유래돼 증식됐는지(그것이 증식된 조직인지 조차도 불확실하지만), 아니면 그 종양세포가 어떻게 떠돌다가 이 자리에 뿌리내리게 됐는지 알 수 없다. 직장 구륭부위에서도 출혈이나 혹이 발견되지 않았다.

부인이 옷을 갈아입은 뒤 나는 그에게 혹이 생긴 뒤 진찰 받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태만함을 점잖게 꾸짖었다. 그러자 부인은 대단치 않은 일로 판단하고 선생님을 귀찮게 해드리기가 미안해서 찾아뵙지 못했다고 변명한다.

이 문제가 부인의 생각처럼 단순치는 않다고 보고 나는 즉시 CT검진을 지시하고 혈액검사를 시켰다. 이것은 빈혈과 임신여부, 특히 난소암(ovarian cancer)진단을 목적으로 종양 마커(tumor marker)를 검출하기 위한 특수 단백질과 분자 표적을 찾기 위한 것이다.

의사 대 환자의 소통 막는 벽
그날 저녁 내내 나는 이 중년부인 환자의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괴로웠다. 미숙한 수련의조차도 촉진(Palpation)으로 진단이 가능했던 가장 단순한 증례를 환자의 무지와 선입견 때문에 적절한 진료 시기를 놓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의사 대 환자의 상호관계(doctor-patient interaction)에 약점이구나 하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의사 대 환자 간의 의사소통에 적은 바로 특이한 환경에서 자란 수련의조차 함정에 빠졌던 근거가 희박한 미신과 그릇된 정보 때문이었이다. 예를 들어 이 환자가 침묵 속에 증식되는 악성 종양을 그녀의 골반 내에 키우고 있다고 생각할 때 단순히 통증이 없다는 이유로 그것이 암은 아니다 라고 믿었던 그녀의 미신(prognosis)를 악화시키는 원흉이 될 것이다.

또한 나의 천진난만한 수련의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그가 품었던 여성이 유리그릇처럼 취약하다는 그릇된 이성관으로 진료 현장에 그대로 머물었다면 그는 주요한 호소(主訴)가 성교통(Dyspareunia)뿐인 중년부인의 병인(病因)을 쉽게 오진했을 것이다.

흔히 환자의 통증 호소는 내용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서 때로는 심하게 왜곡돼 자칫하면 의사가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을 가로막는 허상(虛像)을 그려낸다.

현대의학은 최근 여러 해 동안 의사와 약사, 간호사 등 의료종사자들로 하여금 환자가 그릇된 신념(신앙)과 선입견을 갖고 질병의 진상을 왜곡하는 허상에 현혹되지 말고 제대로 꿰뚫어보는 전문가다운 안목과 문화적인 실력을 겸비할 필성이 있다고 강조하는 수많은 학술논문을 발표해왔다.

그러나 의사 대 환자의 의사소통과 상호교류는 일방통행로가 아니라 왕복 2차선 도로의 관계이다. 환자가 엄살과 거짓말로 허상을 그려내는 것 못잖게 환자 병상 곁으로 다가서는 의사도 나름의 편견과 미신을 떨어내지 못해 환자의 심신과 질환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

통증의 실체와 허상을 믿었던 의대생
부끄럽지만 나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겠다. 내가 청운의 꿈에 부풀어 의과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나는 명확한 육체적 근거가 없는 통증은 실체적인 통증(real pain)이 아니라고 믿었다. 예컨대 히스테리성 통증(hysterical pain : 꼭 짚어서 이렇다 할 증상이 없는데도 마치 관절염인 것처럼 통증 종장 운동장애가 나타나는 이른바 히스테리성 관절염 등에서 호소되는 통증), 정신과에서 말하는 질환반응(Conversion Reaction: 프로이드가 사용한 술어로 정신적 갈등을 육체적 운동 또는 감각적 증상으로 바꿔서 표현하는 반응), 정서적인 압박과 우려에 관련된 통증 등은 모두 실체적인 통증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것은 다른 차원, 쉽게 말해서 좀 더 하급차원(lesser order)의 통증이며 예컨대 고관절부 골절상(hip fracture)과 같은 실체적 통증(real pain)에 비하면 의학을 지망하는 나의 동정심이나 관심의 대상이 못된다고 믿었다. 그 당시 내가 어디서 이처럼 냉소적인 선입견(편견)을 갖게 됐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아무튼 이 그릇된 고정관념에서 어렵사리 벗어나는 일이 나의 초기 의학공부과정의 핵심적인 과제였다.

중년부인의 골반류 촉진 사건 후 일주일이 되기도 전에 부인에 관한 모든 병리검사와 화상진단자료가 내 책상머리에 쌓였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난소암 검진을 위한 종양 마커(tumor marker) 진단결과가 음성(negative)이라는 소식을 당사자에게 알렸다. 그리고 그녀는 임신 상태도 아니었다. CT 결과 그녀의 골반류는 큼직한 섬유종(fibroid tumor:纖維腫) 이었다.  자궁벽을 둘러싼 근육조직에서 자란 양성종양이여서 부인은 이 종양제거를 위한 수술을 받을 필요가 있었지만 그 예후가 훌륭했다.

流彈 피한 부인과 철부지 의사
내 환자는 난데없이 날아왔던 유탄(流彈)을 운 좋게 피했다는 희소식과 행운을 만끽했다. 그러나 그녀는 중요한 의학적 교훈을 몸으로 학습했다. ‘몸 안의 조직뭉치(혹)는 비록 아픔이 없어도 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끝으로 나에게 배당됐던 놀랍도록 천진난만하고 때 묻지 않은 수련의 역시 이번 사건으로 큰 교훈을 얻었다. 그가 촉진으로 찾아낸 섬유종 때문에 소동이 시작됐던 날 그가 내 진료실에서 깨우친 여성의 성적반응의 존재(the ecistence of female sexual response)는 이 숫총각에게 놀라움과 큰 충격이었다. 그다지 머지않은 훗날 그가 이 놀라움이 좋은 경험이였구나 하고 실감하게 될 날(국수 먹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주: 본 기사 ‘바이탈사인’은 병의원 의료현장에서 일어난 생생한 진료기록이며 실화이다. 다만 프라이버시 보호차원에서 환자실명 등 기타 구체적인 세부사항은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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